결혼식 변천과정, 결혼식장과 결혼식 이벤트

오늘의 재테크 정보에서는 결혼식 변천과정에 대한 글로 결혼식장과 결혼식이벤트 입니다.

 

요즘 결혼시즌을 맞아 여기저기 결혼식 청첩장이 날아드네요.

결혼식장 이름도 요즘은 고급 이름이라서 내비에 입력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결혼식 이벤트는 뭐 결혼식장에서 하라는데로 거의 하게 되는데요.

일생에 한 번이라는 고리를 목에 걸고 끌면 누구든 따라가게 돼 있더군요.

 

 

 

 

 

 

한복 결혼복장과 족두리 등은 폐백실에서만 보고 본 예식홀에서는 한 번도 못봤네요.


우리 어렸을 적만 해도 한복 예식을 간혹 봐왔고, 결혼식이 정말 대사였는데.

요즘은 대사라기 보다는 부풰음식점에 다녀온 느낌이라서 매우 싱겁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됩니다.

 

결혼식이 이렇게 서양화 된지는 꽤나 되었는데요, 결혼식장, 결혼식 이벤트, 결혼비용을

확인해보면서 결혼식의 의미를 짚어보겠습니다.

 

 

 

 

 

 

현대적인 결혼식이라고 하는 현재의 결혼식은 1910년대 시양 문물을 접한 모던 걸.모던 보이들에 의해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잡은 결혼식장은 '명월관' 같은 큰 식당에서 신식 결혼식으로 올렸던 것입니다.

 

1930년대로 들어오면서 신식 풍조가 퍼지게 되었고, 초기 예식장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김구 예식부', '만화당 예식부' 등 전문예식장이 서울 종로 근방에 들어서면서

서양식 예식은 점차 전통혼례를 대체해 갔습니다.

 

 

 

 

 

 

 

1950년대는 6.25를 전후해 피난 온 사람들은 결혼식을 올릴 공간이 마땅치 않았겠죠.

하지만 전쟁후유증으로 혼란한 시절임에도 결혼은 인류지대사인 것 만큼은 분명했습니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결혼식장은 서울 관훈동에 있었던 '종로예식장' 이었다고 합니다.

강당같은 공간에 마치 예배당처럼 의자만 쭉 나열한 형태였지만, 면사포를 쓰고 '펑'하고 소리를 내던

사진을 남길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결혼식이 치뤄지는 예식장에서 폐백을 함께 하지만, 당시에는 폐택을 시댁에서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이같은 결혼식 이벤트는 결혼식 외에도 식사,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축포, 진입안내, 신혼여행 등 많아졌습니다.

 

1960~1970년대에는 '예식장 결혼'이 급증한 시기입니다.

이와 함께 신부들의 웨딩드레스도 점점 화려해지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결혼식이 '동네잔치'였던 그 시절 형편 껏 준비해 갔던 부조였지만, 흰색 봉투에 담긴 현금으로 바뀌게 됩니다.

부조를 내면 답례품으로 줬던 찹쌀떡이나 카스테라를 받기 위해 온 가족이 줄을 서던 진풍경....

 

호화 결혼식이 늘면서 1980년대에는 '허레허식'이라고 해 호텔에서의 결혼식이 금지되기도 했었습니다.

1980년대 '결혼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전통혼례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1999년에 호텔 결혼식장 예식을 금하던 법률이 폐지되자,

일부 부유층과 연예인들이 호텔을 결혼장소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 강남을 중심으로 한 중상위층의 호화 예식이 과열 징조를 띠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결혼식 변천과정을 대략 확인 해보았습니다.

결혼식장의 변천, 결혼식 이벤트의 생성과 변화 등 세상이 많이 바뀐 것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결혼 인구 중 80%가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게 웨딩업계의 분석입니다.

 

하여 최근에는 사치스럽고 구태의연한 결혼식에 대한 반발로

자신들의 컵셉트에 맞춘 '개성있고 톡톡튀는' 결혼문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신랑.신부가 원하는 대로 결혼식을 기획할 수 있는 하우스 웨딩이 각광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